생활협동조합의 가치
연세대학교는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이 있다. 1인 1표, 사회적 경제 등 여러 가지 언어로 표현되는 생협은 학생들이 만든 조직이다. 생협 창립을 함께한 김민우 기획총무부장은 “생협의 대표가치는 자주성, 민주성이다”라고 했다. 학생들이 모여 스스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생협은 군사독재 시절 생활비를 조달하기 힘들던 학생들이 자판기를 직접 운영하면서 그 기원이 시작됐다. 자판기 사업의 수익은 모두 학생들에게 수익이 돌아갔다. 식당 및 매점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생협은 학생을 고용하는 한편 임금 및 장학금 형태로 수익을 환원했다. 학생들은 학교와 협력하여 1994년도에 연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을 세웠다. 생협의 설립 이념은 다음과 같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연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에서는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대학 본연의 기능인 연구, 교육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교육지원사업 영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정립과 창조력이 필요하다는 대학 구성원 공동의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조합원 복리증진과 건전한 소비, 생활 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대학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94년 12월에 설립되었습니다.”
주요사업으로는 “조합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구입과 공급사업”, “조합원 생활개선과 복리증진을 위한 사업”, “기타 생협의 이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 등이 있다. 생협은 기본적으로 매점, 식당 운영을 통해 싼값에 음식과 물품을 제공하고 동시에 조합원에게 도움이 되는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생협은 이윤을 남기지만 모두 조합원에게 환원되고, 조합원의 대표들인 대의원 총회에서 사용 내역을 결정한다. 가장 큰 사업은 후생복지회관 건립비이다. 94억이 모여있다. 또한, 총학생회 생협장학기금으로 2007년까지 52억이 지급됐다.
생협은 부속기관으로서 생협학생위원회(이하 생학위)를 두고 있으며 이는 학생들이 생협 가치를 전파하고 학생조합원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생협학생위원장 심산하(PSIR·14)씨 인터뷰
두리 생협학생위원회는 학생회인가요? 생협학생위원회에 학생과 위원회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요.
심 위원장이 내부 투표로 선출되기 때문에 학생회는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회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94년도에 선배들이 학교에 자판기를 한 대 들여놓았고 그 자판기를 한 대, 두 대 늘리면서 생협의 모태가 되었어요. 그 뒤에 생협이 점점 성장하고 훨씬 더 많은 매장들이 생기면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서 학교와 분담했어요. 동시에 당시 학생복지위원회라는 형태로 생협과 학생들이 협력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었어요. 학생복지위원회는 생협을 비판, 감시, 협력하면서 유지되다가 2013년도에 다양한 내부, 외부 비판으로 인해서 생협학생위원회라고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두리 학생복지위원회에 대한 어떤 비판이 있었나요?
심 생활협동조합이 생협 정신에 따라서 만들어진 게 학생복지위원회였어요. 그 당시에는 학생복지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높았지만 이후 합의가 낮아지면서 ‘학생복지위원회가 복지를 담당해야지, 왜 정치적인 행동들을 하는가?’에 대한 비판이 있었어요. 그런 비판들이 어느 정도 ‘학생복지위원회’라는 협소한 이름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고민이 있어서 이름을 변경했어요. 명칭 변경에서 드러나듯이 생협학생위원회는 단순히 복지제공 단위를 넘어서 학내에서 생협이 왜 만들어졌는지, 생협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고민이 녹아있어요. 생협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에 자본주의가 기계화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데 반발해서, 또한 자급 자족적인 공동체를 꾸려보자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생협이 유럽권 국가로부터 시작했지만, 한국에 들어오면서 여성, 생태, 동물, 농업 등 다양한 의제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해나가면서, 그리고 공동체를 만들면서 자리를 잡았고요. 연세대학교 생협학생위원회도 마찬가지로 이런 의제들을 학내외에서 확산시키고자 활동하고 있어요. 통상 생각하는 선출직 대표자로 구성된 학생회로 보기에는 모호하지만, 중요한 학생조직으로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리 생협학생위원회에 누가 참여할 수 있나요?
심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조합원이죠. 학부생 조합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생협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이 함께 활동할 수 있습니다. 생협의 가치를 퍼뜨리고 조합원들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들을 마련해 둔 상황입니다. 몇 년 전에 연세대학교 생협학생위원회가 외부 협동조합들과 협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두리 그럼 지금 학교에서 생협학생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심 업무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생협과 협력하는 대내협력을 담당합니다. 대내협력은 생협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이고요. 대의원총회 참석하거나 생협의 결정 과정에서 감사와 이사로서 참여합니다. 또한, 학생식당모니터링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역할인 조합원 복지는 생협이 조합원으로서 누려야 하는 다양한 혜택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업입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생협 생활장학금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들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고, 이런 분들에게 학기마다 100명에게 100만 원 생활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국가장학금, 외부장학금에서 소외된 복지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에게 지급하기도 하고요. 단순히 학비 지원이 아니라 생활비 지원이라는 점에서 조합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돼요. 한가위 귀향단 버스, 조합원 한마당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의 복지를 지키고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생협의 가치 확산’입니다. 강연희, 세미나, 포럼, 기행 등을 진행합니다.
두리 생협학생위원회가 왜 있어야 하나요?
심 연세대학교 생협이 자본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영향력의 측면에서도 정말 큰 공간인데, ‘처음에 생협이 만들어진 생협의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직면했을 때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연세대학교에 학부생 조합원이 2만 명이 넘어요.
두리 본인이 조합원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심 조합원 홍보를 하기 위해 에코백, 텀블러를 나눠주는 조합원 이벤트도 있어요. 자율경비 납부가 의무였을 때 조합원이 100%이었는데 바뀌면서 가입률이 낮아졌어요. 하지만 70%는 되어서 나름 가입률이 높은데 조합원분들의 복지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생협이 제대로 하고 있나 했을 때 부족한 면이 있어요. 연세대학교 생협이 자본주의 체제에 반발의 목소리를 냈고, 여성주의, 생태, 농업 측면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문화를 선도해왔어요. 그 역할을 계속해올 수 있도록 감시와 비판을 생협학생위원회가 마땅히 해야 하지 않나. 저희의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두리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심 생협학생위원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죠. 그리고 생협에서 존중도 많이 받고, 협력을 잘해주시는데, 학생들이 임기가 1년에 한 번씩 바뀌고 구성원이 바뀌니까 인수·인계의 측면이 부족하고 홍보의 측면에 약점이 있습니다. 또한, 생협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연세대학교에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았어요.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자금조달 체계가 부실한 측면이 있어요. 몇 년 전부터 학생회비를 못 받게 되었고, 자금 조달하는 방식이 봉사장학금을 운영비로 써요.
비판
구조적 문제
생협은 조합원들이 사실상 주인이다. 하지만 주인의식을 느껴본 조합원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모든 결정이 대의원을 통해 이뤄지고 이중 학부생이 참여할 수 있는 학부 대의원 30명 가량은 단과대 학생회에서 선임하기 때문이다. 단과대 학생회가 위임된 권력이 있기는 하지만, 공개모집을 한다면 학생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정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의원 대회에서 어떤 사업들이 통과되고 회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세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생협 사무실에 가면 이런 기록들을 얻을 수 있지만 그럴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생협과 생학위에서 생협 회계와 사업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온라인으로 공지해야 진정으로 조합원들에게 열린 조합이 될 것이다. 위 사안은 2017학년도 1학기 정기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여러 대표자가 제기한 의문사항이다.
생협의 가치?
생협은 생활협동조합 가치를 우선으로 삼는 기업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합원의 복지가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값싼 편의점, 식당에서 이런 조합 정신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학생들이 메뉴 제안이나 사업제안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결국 열린 것은 생협 학생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와 생협 전화번호 한 개뿐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생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할 때 생협은 생협 가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논쟁
생협과 생학위에 대한 비판은 오래되었다. 인터뷰에서 심 씨가 언급한 대로 학생복지위원회가 정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학생의 복지를 위해 쓸 에너지를 인권, 여성주의 등 조합원 복지와 상관없는 데 쓰고 있다는 지적은 2017년도 1학기 정기 확대운영위원회에서도 불거졌다.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 심재용(정치외교학·15) 씨는 당시 생협학생위원회 발제 때 생협이 회칙에 근거한 조합원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경제적 운영보다는 정치적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생협이 무엇이고 학생 복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학생사회 내에 전혀 합의가 없다는 뜻이다. 생협학생위원회는 20년 동안 존재해오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생협의 가치가 무엇인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히 학생복지위원회를 생협학생위원회로 바꾸기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을 설득하고 생협 가치를 알려 나가는데 힘쓰는 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학생이 만든 것
인터뷰에서 보듯이 생활협동조합은 학교 구성원들이 직접 만든 조직이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서로의 생활을 돕고 이를 통해 누군가를 도와주며 협동과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이제는 관성으로 인해 거대한 기업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졸업하고 누군가는 조합원으로 남지만, 생협은 학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생협이 바뀔 수 있는 계기는 멈춰버린 관료조직이 아닌, 직업이 되어버린 생협이 아닌, 아직 학생인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다시 협동과 사회적 가치를 살려 나가고 모두의 문제를 공동체의 논의 속으로 끌어올 때 생협은 학교에 다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홍찬 기자
hongsterul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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