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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두리> 과월호 다시보기/9호 - 2016년 3월

[#폭설 #제주공항 #제주도민] 미디어 다시 읽기


지난 1월 23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는 뜻밖의 눈 폭탄에 시달렸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르신들도 평생 살면서 이런 눈은 처음 본다며 놀란 그런 눈이었다. 눈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자고 일어나니 제주도가 한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배, 비행기 육지와 제주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두 교통수단이 모두 마비되었고 제주도는 고립됐다.


그때 제주도는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서귀포시와 제주시가 나뉘는데, 한라산의 존재는 눈이 올 때 새삼 두드러진다. 산간지방에는 흔히 평지보다 눈이 많이 내리는데, 산간에 특히 심한 폭설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길이 모두 통제됐다. 동시에 한라산을 우회하는 도로들 역시 결빙과 폭설로 소형 통제 혹은 전면 통제되는 상황이었다. 서귀포시에 거주하는 나는 식당에 갈 때마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강제로 여행하게 된 관광객들을 많이 마주쳤다. 그들은 육지에 있는 이들과 통화하며 “갇혔어. 못 나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쳐 보였다. 

우연히 방문했던 공항은 지옥이었다. 공항사태가 시작된 첫날, 제주공항에서 멈춘 시내버스에 타려는 관광객들은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몰려들었다. 그런 와중에 아예 시내로 나가기를 포기하고 공항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었고, 육지로 가야만 하는데 못 가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고등학교 후배는 입대 때문에 논산으로 가야 하는데 2일 전부터 시작된 대규모 결항사태로 입대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매일 아침에 공항을 와서 오늘은 비행기가 뜨는지 확인하지만, 오늘도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얼마 안 가서 제주공항에 관한 다양한 기사들이 미디어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주 날씨가 심상치 않음과 이로 인한 결항에 대해 다뤘다. 이내 제주공항에 관광객들이 발이 묶이며 노숙을 하는 상황에 이르자, 미디어는 관광객들의 피해 상황을 보도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택시가 시내로 이동하는 것에 10만 원을 요구했다든지, 바닥에 깔고 잘 수 있는 박스를 1만 원에 판매했다든지, 공항에 먹을 것 마실 것이 모두 동났다든지. 제주도는 온갖 미디어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제주도가 폭설로 고통받을 때, 울릉도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울릉도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연이은 폭설로 울릉도의 대형마트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신선 식품이 동이 나버렸다는 이야기, 관광객들이 일주일이 넘게 섬에 갇혀있다는 이야기, 경이적인 적설량으로 인해 이동조차 힘들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제주도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접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가 아녔을까. 이례적인 폭설로 공항과 항만이 잠정적으로 운행이 중단됐고, 수만의 관광객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별다른 행정적인 지원도 없고 그 상황을 이용한 제주도민들은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정도. 하지만 제주도민으로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몇 있다. 공항에서 판매하는 그 상자는 정가가 1만 원이었고,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은 것과 마찬가지로 제주도민들도 무척 괴로웠다고. 항구에 유조선이 들어오지 못해 제주지역의 난방유가 동나기 시작했고, 차디찬 방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가정이 속출했다. 또 일부 주유소에서는 휘발유마저 동이나 자동차용 연료도 고갈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불안이 퍼졌다. 감귤 농가가 뜻밖의 눈으로 나무가 죽고 감귤이 얼어 터지는 등의 피해도 있었고, 육지로 수송해야 할 귤이 항구에서 썩기도 했다. 때아닌 폭설을 만난 차들은 눈길에 미끄러지고 전복됐다. 버스는 내리막에서 미끄러져 행인들이 버스를 밀어 멈춰 세웠고, 재난영화처럼 차들은 길거리에 버려졌다. 




변명 아닌 변명


제주공항 사태를 직접 목격한 제주도민으로서 이번 사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최대의 관광지로서 그리고 5분에 한 번씩 비행기가 뜰 정도로 분주한 공항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책도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미봉책에 불과한 정도라는 사실이 그렇다. 항공사, 공항공사, 제주도, 국민안전처는 모두 서로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보는 책임의 ‘폭탄 돌리기’가 여전하다. 주변에서 제주도 관광도 이제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등 후폭풍도 두렵다. 제주도는 이제 관광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제주 관광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뀔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제주공항 사태가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라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은 사실이다.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제주 공항과 관련돼 기사는 전체 언론사에서 450여 건을 쏟아냈다. 그러나 공항 밖의 제주도에 관심을 두는 미디어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이와 대조된다. 많이 읽을만한 기사가 (상업적으로) 좋은 기사라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오죽하면 기사 제목에 ‘낚였다’는 표현이 등장하겠는가. 하지만, 박스를 1만 원에 팔았다, 제주도민들이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등의 이야기까지 사실 확인 없이 양산해 유통된 것은 속상한 일이었다. 사실, 정말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댓글에서는 비난을 바가지로 퍼부을 것이고 그러면 기사의 조회 수는 보장된다.

제주 공항에서의 참상이 끝나자 언론은 이제 제주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상황이 끝났으니 보도할 내용도 없지만, 언론에서 지적을 해주고 그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그냥 상황을 보도하고 그 자극적인 상황으로 담당자들에게 열띤 비난을 퍼붓고 떠나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주도민들은 싸잡아서 비난의 대상이 됐고, ‘미디어는 나쁜 것만 보도한다.’며 푸념하고 있다. 

영화 『특종:량첸살인기』는 일생일대의 특종을 보도하는 기자를 보여준다. 기자는 연쇄 살인범이 남긴 자필 문서를 단독으로 입수해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이 보도로 해고 위기에 처했던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국장은 그를 총애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생일대의 특종이 일생일대의 오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기자는 충격에 빠진다. 영화스러운 진행으로 모든 일은 조용히 끝나버렸고, 사건의 경위를 아는 사람은 주인공 기자와 방송국 국장밖에 없다. 국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뭐가 진짜고 가짠지 가려내는 거 그거 우리 일 아니야. 보는 사람들 몫이야.”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 보자. 제주도 폭설로 인한 제주공항 마비 사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태를 여러 미디어에서 다뤘다. 사실이 아닌 것도 있었고 사실인 것도 있었고. 그러나 제주 공항 밖에도 눈 피해로 고통받는 제주도민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다만 ‘제주공항에 관광객들이 고통받고 있다’가 재생산되고 확대되는 와중에 공항 밖은 모두의 안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거짓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 좋은 가십거리를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현실. 이제 우리는 거짓인지 사실인지를 판단하는 몫에서, 보도된 사실이 일부분인지 전체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몫까지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이종현 기자

green198800@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