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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두리> 과월호 다시보기/9호 - 2016년 3월

[음악으로 듣는 이슈] Illionaire Life, 당신은 가능한가요 - 신자유주의 시대 욕망의 분출구, 한국 힙합


“혼란스러운 머리로 돈되는 일만 골라

누구는 몇천 벌 때 나는 몇십에 목숨 걸어

다 때려치고 싶지만 그래도 돈은 벌어

먹고 살아야지 땅에 남자로 태어나

가난에 태연한척 할수 없기에 주먹을 뻗어”


- 도끼(Dok2), “On My Way [Feat. Zion.T]”


돈, 성공, 섹스, 디스(Diss), 스왝(Swag). 모두 현재 힙합이라고 불리는 음악이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다. 그리고 2016년 한국 땅에서 힙합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부정할 수 있는가? 자기를 쫓아다니는 여자들에 대한 성적 농담을 늘어놓고, 자신보다 랩을 못하는 지진아 래퍼들을 랩으로 깔아뭉개고,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천만 원이 넘는 시계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롤스로이스를 굴리는 자신의 경제적 성공을 과시하는 이야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힙합적인 멋, 스왝으로 수렴하는 현상.


물론 힙합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러한 특징만을 보고 힙합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모든 힙합 음악이 이런 종류의 소재에 경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힙합을 다른 종류의 음악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랩이나 비트 같은 음악적 특징만이 아니다. 음악가가 추구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 힙합이라는 음악의 노골적인, 혹은 ‘솔직한’ 이야기는 비록 세속적으로 들릴지언정 듣는 이에게 사이다 같은 속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힙합이라는 장르 전체의 특징이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주요한 힘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런 현상이 누군가의 눈에는 눈꼴사납게 보일 수도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이 정도로 노골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장르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노골적인 욕망에 대해서 피상적인 천박함만을 바라보고 비난을 가하는 것은 저차원적인 태도다. 특정한 형식의 음악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결코 떼놓은 채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이 본격적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엠넷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가 방영되기 시작한 2012년을 그 기준점으로 잡고 싶다. 물론 2012년 이전의 한국 힙합 씬이 아무런 성취도 이루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Show Me The Money>는 몇몇 유명한 뮤지션과 대중가요의 랩 파트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힙합이라는 장르를 한국 대중음악계의 한 축으로 올려놓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힙합을 ‘돈이 되는’ 음악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미국 힙합 음악을 다룬 책 『아메리칸 힙합』에서는 00년대 이전의 힙합을 빈민가 슬럼의 서사와 기운이 남아 있는 ‘거리의 음악’으로 구분하고 00년대 이후의 힙합을 메인스트림한 ‘클럽의 음악’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도식을 (거칠게) 한국 힙합에 적용하면 한국 힙합이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분기점을 2012년으로 봐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니가 배신한 꿈 피하고 비켜갈 때

난 첫날부터 등뒤에서 혼자 지켜왔네

차 사고 자랑하는 날 욕하고 시기하기 전에

누가 더 행복하고 잘사는지를 봐

이제 와서 힙합인 척하는 애들에게 전해

I’m outcha and I’m livin my illionaire life”


- 도끼(Dok2), “Still On My Way [Feat. Zion.T]”


물론 메인스트림 진입은 한국 힙합을 차츰 변화시키고 있다. 『아메리칸 힙합』은 00년대 이후의 미국 힙합이 “보다 단순해지고 자극적으로 변했다. 알앤비와 결합하여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돈이든 여자든 단순히 자신을 과시하는 내용이 늘어났다”고 파악한다. 이런 변화는 한국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스윙스, 도끼, 씨잼, 블랙넛, 바비, 송민호 등 스왝과 디스에 능한 래퍼 혹은 그런 소재를 자신의 이미지로 새롭게 내세운 래퍼들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의미심장한 부분은 이러한 힙합의 메인스트림화가 시작된 시점이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포스트-IMF 체제인 00년대부터 서서히 시작된 경제∙사회적 신자유주의화는 2008년 이명박 정부, 2012년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사회문화적으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의 개인화’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념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실패에 대해서 사회가 아닌 개인이 책임을 지는 풍토가 점차 만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힙합은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 이념을 가장 뿌리 깊게 내면화한 음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 자신의 어머니에게 송금한 명세표가 올라온 래퍼 블랙넛의 인스타그램


“얼마전에 엄마 빚

절반을 정리 피같은 5천을 갚았지

동생들은 말해 형도 차 한대 굴려

아이러니해 잘 되니”


- 스윙스(Swings), “Rap Star”


여러 힙합 뮤지션의 인기곡에서 유독 ‘가족의 빚을 자신의 능력으로 갚는다’는 서사가 스왝의 도구로써 활용된다는 건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사회에서의 ‘영웅 서사’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은 가족을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통해 구원하는 것. 사람들은 이러한 서사를 통해서 ‘랩스타’들에 대한 거리감을 좁힌다. 나와 상관없이 그저 돈을 많이 번 스타가 아니라 빚에 허덕이는 자신들과 그리 다를 게 없었던, 하지만 자기 능력을 통해서 그 자리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한 능력자들. 많은 사람이 힙합의 이런 부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탈출을 꿈꾼다. 누군가는 좋은 일자리를 통해서. 누군가는 사업을 통해서. 누군가는 그들과 똑같이 가사를 쓰고 마이크를 잡으면서.

 

현재 한국 힙합은 욕망의 분출구다. 하지만 그 노골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은, 내게는 점점 더 생존이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한 거울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욕망은 슬프다. 단순히 현실이 어려워서만이 아니라, 그 욕망이 대다수의 사람이 실현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많은 래퍼가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타인을 밟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고 토해내는 것처럼 들려서. 당신은 성공할 수 있는가? 아니, 당신은 ‘탈출’할 수 있는가? 랩 스타는 그 질문에 대해서 답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성공을 노래할 뿐이다. ‘Ill’ionaire한 풍경이다.


정구원 기자

znetcom@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