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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두리> 과월호 다시보기/11호 - 2016년 5월

[Humans Of Yonsei] 사람 냄새나는 연세인들의 봄, 4번째 이야기

<연세두리>의 이지수 기자가 마음을 울리는 질문들과 함께 연세대 캠퍼스를 곳곳이 돌아다니며 가슴 따듯한 연세인들의 대답을 들어보았다.


이지수 수습기자

 jisoo.kelly.lee@gmail.com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은 봉사활동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고, 손자들까지 봐주고, 또 재정적 문제를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어요. 사실 옛날에 부녀회를 통해 몇 번 시간 내서 구청으로 봉사 갔던 적이 있었어요. 근데 목욕 봉사를 다녀오고 너무 좋았어서, 손녀, 손주를 키우면서도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종종 봉사를 가곤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장애인과 노인분들 목욕시켜드린다는 게 사실 쉽지 않지만, 물질적으로는 제가 도움을 줄 수 없으니, 행동적으로 심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 2년 정도 일을 더 하고, 2년 후엔 장애인과 노인 목욕 봉사를 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장애인 복지사 자격증도 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가끔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거 같아요,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걸 바꾸느냐는 생각이요. 사실 전 공부도, 남들이 정의하는 성공도, 욕심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큰 걸 바란다거나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가 17살 때 아빠에게 보냈던 이메일 내용을 바꾸고 싶어요. 제가 유학생활 중에 아빠랑 이메일로 많이 대화했거든요. 그때는 카카오톡이나 다른 메신저들이 활발할 때가 아니라.. 근데 그날도 역시 아빠가 돈에 대해서 엄청 이야기하시는 거에요. 아버지가 증권가에서 일하셨는데 돈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아 하셨거든요. 예를 들어 어떻게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이런 문제요. 어린 저로서는 왜 사람들이 돈에 미치고 왜 우리 아빠는 돈 생각으로 괴로워해야 할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리 집은 충분히 잘살고, 돈이 많으니 행복하게 살면 되고 불행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매번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면 돈은 수단일 뿐이라고 난 우리 집이 가난해져도 아빠를 사랑한다고 늘 얘기했었거든요. 그날은 저도 아빠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괴로워서 아빠에게 “더는 아빠 딸이고 싶지 않아” 라고 이메일을 보냈어요. 이메일을 보낸 후 며칠 동안 답장이 없길래, 일하시느라 바쁘시구나, 나에게 화가나 신 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주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병을 앓고 계셨는데 갑자기 악화되신 거였어요. 17살이었던 저는 엄청난 후회와 좌절의 시간을 보냈던 거 같아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4~5시간을 큰 공항을 향해 달리는데 차 안에서 계속 울었어요. 내가 아빠를 죽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괴로워요. 그래서 생각을 안 해요, 머릿속에 떠오르면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머금고 생각을 지우려고 애를 써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또 울게 될 테니까요. 나는 아빠를 정말 사랑해요. 정말 존경하고요, 그래서 이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난 평생 아빠 딸이야, 난 평생 아빠를 사랑하고 응원할 거야, 아빠 우리 행복하자” 로 바꾸고 싶어요."



"내일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능력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뭐든지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얻고 싶어요. 하하.. 평범한 대답은 아니죠?. 빌딩이나, 예술 조각상을 제가 상상하는 데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되게 생생한 꿈을 꿔요, 꿈에선 내가 원하는 이미지들이 막 떠다녀요. 그래서 제상상속 또는 꿈속 작품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제 표현력에 한계도 있고, 미술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양식이나 스타일로 표현하는 게 한계가 많다는 느낌을 종종 해왔어요. 그래서 제 머릿속에 그리고 상상 속에 있는 작품, 이미지, 그림, 빌딩들을 실제로 만들어 시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