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가는 방학, 시간표를 짜면서 영어강의를 염두에 둔 적이 있다면 당신은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익숙하거나 절대평가에 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 없이 신청하기에는, 주변에 영어강의와 관련된 흉흉한 소문이 너무 많다. 영어강의를 들었는데 교수님이 영어를 너무 못해서 수업 내내 멍하니 있다 나왔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영어를 못 하는 사람도 일심동체로 얼이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 차라리 한국어로 진행되었다면 교수님도 학생들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수준 떨어지는 영어강의는 왜 생겨난 걸까? 또, 그렇다면 영어강의는 항상 독인가? 영어강의를 생각하면 학생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많은 질문에 답한다.
영어 못해서 미안하다
연세대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만 들어올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당연히 영어를 능숙하게는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영어강의를 들으며 괴로워하는 학생 중 많은 수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 교수님의 설명을 못 알아들어서 힘들어한다.
그러면 한국어 강의를 들으면 되지 않냐고?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강의를 듣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정은영(경영·15) 씨는 ‘교수님은 영어를 능숙하게 하시는데 난 잘 못해서 힘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회계원리'가 기존에는 신촌캠퍼스에서만 개설됐는데, 2015년 2학기에는 국제캠퍼스에서도 개설돼서 선배들이랑 듣는 것보다는 1학년들끼리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했어요. 그런데 영어강의라서 교수님의 설명을 알아듣기가 힘들었어요. 시험공부는 거의 독학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영어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는 1학년 때 듣거나 그 이후에 들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따로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특히 경영학과 학생들 중에 이런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경영학 전공 강의는 실제로 2016학년도 1학기 개설된 123개 강의 중 43개가 영어강의일 정도로 영어강의의 비율이 높다.
영어를 잘해도 문제야
하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영어강의에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교수님의 영어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수강생들이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민하(UIC·15) 씨는 경제학 관련 영어강의에서 영어를 너무 못하시는 교수님들이 가끔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강의에서는 교수님께서 ‘제곱근’ 같은 수학 용어를 잘 모르셔서 한국어로 많이 쓰시는 바람에 외국인 학우들이 당황한 경우도 있었어요.”
박예은(경영·15) 씨는 용어의 구분이나 전달력이 중요한 강의들에서 교수님의 서툰 영어 실력 때문에 진도를 따라가기 힘든 적이 많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저는 UIC나 영문학과는 아니지만, 영어강의를 많이 들은 편인데, 그중에 교수님의 영어 실력이 수업에 지장을 준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경영학과 동기 중에 전공강의를 영어로 들으며 교수님의 영어 실력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도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학사지원팀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영어강의를 하시는 교수님들은 모두 영어권 국가에서 학위 과정을 이수하신 분들이에요. 실제로 조사해 보시면 교수님이 영어를 못해서 불만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영어강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례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교수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왜 절대평가인데 성적이 이 모양...
2016학년도 1학기 수강편람에 따르면, 영어강의는 대학영어 계열 강의나 UIC 전용 강의를 제외하고 절대평가가 원칙이다.
하지만 절대평가라고 해서 꼭 성적을 잘 받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라고 해도 애초에 A권에 진입하기조차 힘든 경우가 있다. 시험이 무척 어렵거나, 앞에서 나온 사례들처럼 교수님이 워낙 영어를 못 하셔서 공부하기 힘들거나, 교수님이 자신만의 특이한 성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타임테이블’이나 ‘에브리타임’ 등에 올라온 강의 후기를 보면 절대평가 강의에서 A를 받은 사람이 너무 적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2016학년도 1학기에도 개설된 정예림 교수의 ‘경영과학’ 영어강의의 경우, 수강 후기 란에 이 강의가 절대평가가 아니다, 맞다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절대평가가 맞다는 쪽은 ‘시험을 잘 못 봤는데 A를 받았다’, 상대평가라는 쪽은 ‘A를 받은 사람이 너무 적다’고 주장하며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학사지원팀장은 이에 대해 영어강의는 UIC 전용 강의나 대학영어 계열 강의가 아닌 이상 절대평가가 원칙이지만, 구체적으로 성적을 어떻게 주는지는 교수의 자유에 맡긴다고 답했다. 절대평가라는 말에 충분한 고민 없이 영어강의를 신청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영어강의가 많은 듯한 건 ‘기분 탓’?
2015학년도 2학기 학부 과정에서 개설된 영어강의의 수는 전체 강의 수의 30%가 넘는다. 영어강의가 많은 이유는 ‘교원업적평가 시행세칙’과 관련이 있다. 시행세칙 상으로 교수는 임용 후 24학점 이상의 영어강의를 수행해야 한다. 왜 학교는 이렇게 영어강의 개설을 독려하는 것일까? 연세대학교 교무팀장은 이에 대해 다른 학교도 영어강의를 다수 개설하고 있으며, 교환학생을 위해서 영어강의는 일정 수 이상 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등이 시행하는 대학평가에서 영어강의 수를 세계화 지표의 하나로 보고 있으므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에게 영어강의는 너무 써
영어강의 중에도 교수의 영어 실력이 좋고 강의도 잘 진행되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수업이 많다. 이러한 학생들은 절대평가의 장점까지 톡톡히 누리면서 ‘영어강의는 숨은 꿀’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영어강의를 들으며 꿀 대신 쓰디쓴 독을 맛보고 있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까닭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제공한다는 목표 대신 형식적으로 강의를 개설하는 데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강의에서 학생들이 이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든 말든 그것은 학교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일단 ‘국제화의 한 증거’인 영어강의를 열었고, 그것으로 학교가 할 일은 끝난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불만을 표한 영어강의 대부분은 몇 년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몇몇 강의는 성적 기준마저 까다로워졌다는 식으로 더 평가가 나빠진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불만은 분명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표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학교가 비판적 의식 없이 강의를 개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대학에 와서 대단한 걸 배울 줄 알았더니 배우는 게 없어.”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푸념이다. 대학은 학교로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철학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험을 통해 학생을 평가하고, 성적을 매겨서 취업 시장에 내보내는 것이 대학의 유일한 목표일까?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온 대학에서, 설명을 알아듣기조차 힘든 강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제대로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영어강의는 취업을 위한 간판으로 전락해버린 대학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 하다.
이린 기자
springoflif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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