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패러사이트 싱글’이라는 단어가 있다. 자립을 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마치 기생충처럼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이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버전으로 바꾸자면 진화한 등골브레이커 정도 되겠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처음 등장할 때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음에도 부모의 등골을 빼 먹는 젊은 세대를 조롱하는 단어였지만 경제 불황에 접어들면서 기생하지 않고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변화했다. 이들의 기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세대는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릴 수가 없다. 혹은 취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자리의 질이 낮아,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는 등골이 휘고, 자식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 한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부모와 자식, 둘 모두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인 셈이다.
최근 이와 같은 비자발적 기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책이 하나 있다. 바로 청년에게 직접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서울시의 청년 수당, 성남시의 청년 배당 등이 그 예다. 둘은 대상 선정, 금액 지급 방식 등 구체적인 시행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청년’에게 상환 의무 없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지자체발 청년 정책은 현재까지 서울과 성남, 단 두 지역에서만 시행되고 있으나 이는 충분히 반길 만한 일이다. 청년에 대한 사회적인 투자를 실현할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풀 핵심적인 고리다. 청년 세대가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그 순간 꼬인 매듭은 풀린다.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활성화, 노인 인구의 부양, 그리고 위험 부담이 큰 신성장 산업 개척. 이 모든 움직임이 청년 세대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투자해야 할 부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청년’이다. 청년 세대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됐다. 청년 복지를 시작하는 것이 곧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복지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기대에 대해 과장되고 낙천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청년에게 투자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환상처럼 존재해왔던 ‘낙수 효과’에 기대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젊은 세대야말로 실질적 생산력을 갖춘 인구이며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투자는 지금 당장의 이득이 아닌 미래의 가치를 향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 준다는 것은, 이들이 당장에 원치 않는 노동시장으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또한, 자식이 부모의 등골을 빼먹지 않고도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년 수당 혹은 청년 배당이 포퓰리즘에 불과하며, 결국엔 그 돈을 유흥에 쓸 것이라는 비판은 애초에 빗나갔다. 2016년 5월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남시의 청년 배당금을 실제 생활비로 사용한 비율은 40.9%였다. 여가 문화비는 단 11.1%에 불과했다. 게다가 사실 배당금을 여가에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청년 ‘배당’은 청년이 존재 자체로 사회적 이익을 만들어 내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창출된 사회적 부를 나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는 셈이다.
다시 패러사이트 싱글로 돌아와 보자. 청년 세대도 부모 세대의 등골을 빨아먹고 싶지 않다. 기생은 결국 개인이 ‘또 다른 개인’에게 기대는 것이다. 한 개인이 사회와 국가에서 삶의 안전망을 찾지 못해 다른 개인에게 의지할 때 기생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가와 사회를 통해서 회생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비자발적 기생충’은 사라질 것이다. 청년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청년 수당(배당)’은 이를 위한 첫 단계다. 이것이 받아들여지고 전 지역으로 확대되어, 결국엔 기본 소득을 향한 논의로 나아가야만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김다정 기자
8dajeongk1992@gmail.com
<“무사히 들어가서 연락해요">
이 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세요’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여진 쪽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특히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24년간 스스로 성 정체성 역시 남성이라고 생각해온 남성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 남성이라서 가지게 되는 여러 권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남성이었다.
군대에 다녀오고 세상에 대해 온갖 불만이 쌓였다. 빼앗긴 시간이 억울했고 부당하게 당했던 괴롭힘, 늘어만 가던 욕설과 온통 이것저것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였다. 이 모든 부당함은 군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좀 더 원인으로 밀고 들어가자면 남자여서. 남자여서 군대에 갔고, 군대를 가서 힘들었다. 군대에 다녀온 나는 그 분함을 어느 정도는 여성에게로 돌렸던 것 같다. ‘일단 여자는 군대를 안 가잖아?’ 게다가 ‘남자가 군대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혹은 ’남자는 집 지키는 개’라고 말했다는 여자들의 사진들(사실인지 조작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은 분기탱천했던 당시의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왔던 나로서는 남자로서 누리는 것들이 당연스러워 보였다. 군대를 가는 것도 어찌 보면 인생의 당연한 순서였고, 그 당연함의 연장에서 남자의 권리(?)는 당연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누리는 편안함과 우월함은 누군가의 것을 (엄밀히 말하자면 여성의 권리였을지도 모르는 그것을) 과거 어느 순간부터 빼앗았던 것의 연장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회상에서 깨어나 돌아와 보자. 강남에서 듣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 있었고, 그 일은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그냥 ‘너’가 싫어서가 아니고, 네가 ‘여성’이라서 싫다니. 전 인류의 절반이 선택한 것도 아닌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의 독일을 비난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지’로 대응하는 모습들은 다소 놀랍다. 인종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던 수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추모하고 안타까워하고 전범을 잡을 것을 주문하는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미디어에서는 정신병이 있었다 등의 몇몇 이유를 가지고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주고 있다.
혹자는 남성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가 아니냐,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 아니냐며 여성 혐오 범죄라는 것 자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과도한 일반화는 잘못이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여성 혐오 역시 일반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들의 망상은 사회를 반영한다고. 민주화 투쟁의 시대에 정신병 환자들은 국가 권력의 폭력을 망상했다. 오늘날, 정신병은 여성 혐오를 망상하고 있다. 여성 혐오는 이제 조금씩 터져 나오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단순히 몇몇 웹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논쟁과 친목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불안에 떠는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이라는 표현은 그 때문에 너무도 슬프고 우울하다. 언제든, 운이 없어지면 그 자신의 생명과 안전은 보장받을 수가 없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주변 여성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던 ‘무사히 집에 들어가서 연락해‘라는 돌이켜보니 말이 너무도 무섭다. 왜 여성에게는 무사히 집에 들어가서 연락을 하라는 말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된 걸까.
이종현 기자
green19880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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