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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두리> 과월호 다시보기/12호 - 2016년 6월

[맛두리 로드] 19금 빙수편

하악하악… 너무 덥다. 햇빛에 온 몸이 녹아 내리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살살 달래줄 뭔가가 필요하다. 달콤한 첫키스 같은. 문득 빙수가 생각난다. 그래 여름하면 빙수지. 입에 넣고 막 비벼! 그러면 불교신자라고 해도 천국을 볼 것이니.



호밀밭


가격 : 5,500원


더운 여름이다. ‘햇빛과 나그네’라는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자꾸만 내 인내심을 벗기려 든다. 뽀얀 속살을 자랑하는 밀크 빙수가 생각나는 햇빛이다. 호밀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주문을 마친 후 발로 바닥을 톡톡 건드리다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 빙수와 팥은 각각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온다. 곱게 갈린 빙수와 붉은 팥을 입안에 넣고 굴리니, 이 초여름에 한겨울을 혀로 애무하는 기분이다. 촉촉이 젖어드는 혀에 감겨오는 팥이 달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흔히 집어 들 수 있는 무턱대고 단 팥은 아니다. 금세 질려버리는 그런 달달함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온 것 같은 그런 달콤함이다. 


부드러움과 달콤함의 공세에 녹아내리는 것 같다가도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는 것은 팥 그릇에 담겨있는 두 덩이의 네모난 떡이다. 부드럽게 혀를 감싸던 얼음과 달리 호밀밭의 떡은 쫄깃함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냥 평범할 줄 알았던 떡에 약간의 커피 향이 가미되어 있어 재미있는 맛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 


둘이서 후식으로 먹기 딱 좋은 양의 빙수를 먹다 보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너다.




밀탑


가격 : 밀크빙수 8,000 / 녹차빙수 8,000


짙은 초록색 녹차빙수와 하얀 밀크빙수 두 개를 맛봤다. 둘 다 끈적끈적한 팥이 얹혀 있다. 밀크빙수는 얼음이 아주 얇게 썰려서 나와서 빨리 녹는다. 재빨리 입속에 넣지 않으면 도망갈 것 같다. 막상 입안에 넣어보면 팥과 얼음이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달지 않아 인상적이다. 입안에서 우유 맛은 달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끌린다. 처음에는 물맛이지만 뒷맛이 고소해서 숟가락은 다시 빙수로 향하고 있다. 팥은 고소하고 잘 씹힌다. 인위적인 색소나 설탕 맛보다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녹차빙수는 녹차 본연의 맛이 진하다. 진해서 쓰기까지 하다. 겨우내 녹차의 맛을 품고 있다가 여름이 와서 분출하듯 푸른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시원함이 머리끝까지 미친다. 떡은 아주 쫄깃쫄깃해서 살아있는 생선을 먹는 것과 같다. 빙수와 떡을 같이 먹으면 미끄덩거려서 느낌이 잘 안 난다. 녹차의 맛이 강해서 단맛이 밀크빙수보다 적게 느껴진다. 얼음이 끝까지 자글자글하게 씹힌다. 깔끔하고 고소하고 시원했던 빙수였다.

 

밀탑빙수의 빙수들은 본 재료의 맛을 잘 살리기 때문에 할머니 손 잡고 마루에 앉아 은색 놋그릇에 담긴 얼음 빙수를 퍼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팝컨테이너


가격 : 오레오 빙수 14,000


여름이 뜨거운 햇볕으로 온몸을 핥는 날이다. 빙수치고는 높은 가격대지만, 막상 나오자 우뚝 솟아있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너질까 아슬아슬한 것도 잠시, 겉에 덮인 오레오 가루를 벗겨내자 부드러운 우유 얼음의 속살이 드러난다. 한입에 삼키니 녹아내린다. 내내 입안에 가득 차 있던 여름이 혀 끝에서 흠칫 물러난다. 한참 먹다가 오레오 맛이 질릴 때쯤이면 함께 나온 시리얼을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바삭한 시리얼과 부드러운 얼음이 뒤섞인다. 어느새 오레오 가루를 모두 벗겨냈다. 여름도 그 살결을 드러낸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다. 어느새 차가워진 내 입술에 여름이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