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나요?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버릇처럼 “네, 잘 잤어요.”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정말 잘 잤나요? 그렇게 되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당신의 눈가에 드리운 그늘, 머리만 대면 감기는 눈이 말한다. 잘 못 잤다고. 왜 우리는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할까.
잠은 죽으면 실컷 잔다
당장 인터넷에 ‘공부 명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생활 습관’ 같은 걸 검색해보면 눈에 자주 띄는 게 잠에 대한 말이다. ‘오늘 내가 흘린 침은 내가 내일 흘릴 눈물이다’ 같은 말들. 놀고 싶은 마음 다 참고 열심히 사는데, 이젠 기본적인 욕구까지도 억압해야 하나. 이런 문화는 우리 뼛속에 스며들어 있다. 오랜만에 할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누워 있으면, ‘이러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한창 과제 하고 공부할 시간인데 난 너무 한가하게 사는 건가? 그렇다고 오늘 하루 후회 없이 보낸 것도 아닌데. 뭐라도 해놓고 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고민하다 내일 할 일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산더미 같다. 이 중 몇 개라도 해결하고 자자. 그렇게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일찍 자면 삶을 ‘열심히’ 살지 않는 것 같다.
행복해지고 싶다
내일 할 일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자려 해도, 핸드폰을 손에서 떼 놓을 수가 없다. 오늘 하루는 너무 바빴고 평소와 똑같은 따분한 하루였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루를 더 생기 있게 만들기 위해 취미 생활에 쏟을 만한 시간은 딱히 없고, 그런 데 기울일 힘도 남아 있지 않으니 결국 손이 가는 건 핸드폰이다. 괜히 카톡을 보내보고, 페이스북도 뒤적거려본다. 일찍 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놓고 잠을 청하려고 하면 마음이 공허하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하루가 쓸쓸할까. 재미있는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행복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뭔가 조금만 더 채워 넣으면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은데. 그런 불안감에 이유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아직은 하루를 끝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를 쓰고 버리는 세상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가 잠을 못 자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아직은 너무 부족한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신조어 중에 ‘이케아(IKEA) 세대’라는 게 있다.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세련된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가격은 그에 비해 저렴해 언제든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다. 훌륭한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실업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가 이케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사람이 너무 흔하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늘어나고 있으므로 기업은 청년을 쉽게 쓰다 버린다. 씁쓸한 상황이지만 그렇게 쓰다 버려진다고 해도 ‘날 쓰기라도 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한다. 그건 좋은 경력이 되니까. 애초에 쓰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으니 우리는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다. 힘들게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한다고 해도, 언제 세상으로부터 버려질지 모른다는 것. 주위에 버려지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렇게 버려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세상이 언제 나를 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오늘은 누구를 새것으로 교체할지 고르고 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회
한국에서 버려지는 것은 ‘일을 하는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명마저도 쉽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얼마 전까지도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그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자주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을 바로 보여준 것이 세월호 사고다.
2014년 한겨레에서 서울, 경기, 인천의 고등학생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세월호 사고 이전 46.8%에서 이후 7.7%로 급락했다. 혼자 있을 때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내가 사고를 당했는데, 안내방송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나온다면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할까 아니면 도망쳐야 할까? 많은 사람은 이에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해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모두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한국 사회는 개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걸까?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기서도 비롯된다. 국민 개인의 삶, 나아가 생명을 그다지 귀중히 여기지 않으며, 때때로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 사실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불안을 일으킨다. 내가 어느 날 ‘당연히 안전할 거라고 믿은’ 상황에서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을 맴돌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 사회는 거대한 세월호다’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너무 과장된 비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세월호처럼 침몰해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 그 침몰 속에서, 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지만, 억울한 죽음과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너무 많이 눈에 띄는 세상에서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
한국에서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성인 인구의 12%인 400만 명에 달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게 보기 드문 현상은 아니라는 거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라고 해서 우유를 데우고, 차분한 음악을 들어보라고 해서 귀에 이어폰을 꽂는 우리. 그런 방법이 오늘 밤은 잠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내일 밤, 그다음 날 밤은 또 불안감에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보려 할 것이다. 부디 꿈속에서는 버려지지도, 상처받지도 않길.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길. 모두 잘 잤으면 좋겠다.
이린 기자 springoflif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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