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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두리> 과월호 다시보기/12호 - 2016년 6월

[기획] 못 살겠다 붙여보자 - 당신도 쓸 수 있다. 대자보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08학번 주현우 씨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중에서


학교에 또 일이 터졌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나도 뭔가 한마디 하고 싶다. ‘내가 볼 땐 아무래도 이게 문제인데, 왜 아무도 지적을 안 하는 거지?’ 내가 이제 딱 나서서 시원하게 말할 때다. 그런데 어디에 쓰지? 페이스북에 쓰자니 내 지인 몇몇만 보고 지나칠 뿐이다. 좀 더 전체 학생에게 내 목소리를 전할 있는 방법이 없을까? 중앙도서관이나 학생회관에 붙어 있던 몇몇 대자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도 한 번 써볼까? 그런데 대자보는 어떻게 쓰는 건지 어디에 붙이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막막해진 당신을 <연세두리>가 도와 드린다.



종이부터 글씨까지


대자보를 쓰기로 결심한 당신. 이제 종이를 살 것이다. 그런데 종이는 어떤 크기가 좋을까? 작게는 A4 지에서 크게는 전지까지. 대자보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A1 지를 많이 이용한다. 너무 큰 종이를 쓸 경우 가독성이 떨어지고, 너무 작은 종이를 쓰면 멀리서 전혀 눈에 띄지 않아 대자보를 붙였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글씨가 좋을까 프린트하는 게 좋을까? 보통 쓰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손글씨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에는 컴퓨터로 쓰고 인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오히려 인쇄된 게 읽기 쉽다는 의견도 있다. 당신이 너무 악필이거나 큰 종이에 긴 글을 쓰기에 팔이 너무 아플 것 같다면 인쇄하는 것도 고려해보자. 상당히 특이한 글씨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국대학교의 모 단과대 오리엔테이션에서 생긴 성희롱에 대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타 단과대 회장의 대자보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논란이 된 이유는 회장의 글씨체가 상당히 특이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놀리려고 저렇게 쓴 게 아니냐’ 같은 의견도 제기되었다. 어쨌거나 회장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당신의 글씨체가 누구라도 신기해할 만큼 특이하다면 손글씨로 대자보를 쓰는 것은 한번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속을 어떻게 채울까


이제 간신히 쓰는 단계로 들어왔다. 어떤 내용을 다룰까? 꼭 심각한 문제에 관해 써야 할 필요는 없다. 별로 화제가 되는 문제가 없어도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면 된다.

어떻게 써야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때에 왔다. 학교 어딜 가든 갖가지 주제에 대한 대자보가 가득 붙어 있다. 그 속에 당신의 대자보가 묻혀 버리지 않으려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최대한 인상적으로 전달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대자보가 붙은 해당 학교를 넘어 대학 사회 전체에 화제가 되었던 대자보 두 개를 살펴보자.



'안녕들 하십니까’ 마음을 울리는 문장


앞에서 인용한 ‘안녕들 하십니까’의 경우, 전문을 읽어보면 일단 글 전체가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문장력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점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키워드’다. 사실 대학생으로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이 터지면 한 번쯤 ‘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이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표현은 크게 와 닿았다 이 대자보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이 나오고, 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몇 가지를 지적해 독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후, 다시 ‘안녕들 하십니까’로 마무리하는 구성 역시도 이 대자보가 가진 강점이다. 대자보를 다 읽은 독자의 마음에는 깊은 여운이 남게 된다. ‘난 정말 안녕한가? 그래, 그동안 안녕하지 않았던 것 같아.’ 이 대자보는 제목부터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특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안녕들 하십니까’는 SNS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안녕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수많은 대자보를 낳았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 셈이다.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 풍자의 승리


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벌어진 이후, ‘국정화 교과서 반대’를 주제로 하는 수많은 대자보가 쏟아져나왔다. 그 중에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은 특히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다. ‘북한다운’ 글씨체와 문화어를 그럴싸하게 흉내 낸 글은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만했다. 또 대부분의 대자보가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고 제목을 내건 와중에 갑자기 ‘국정교과서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눈에 확 띌 수밖에.

이 대자보는 ‘북한스러운’ 말투로 국정화 교과서를 옹호함으로써 국정화 교과서가 지닌 독재 미화적 성격을 비판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중간중간 3‧15 부정선거와 유신체제를 언급하는 세심한 구석도 보인다. 마지막에 ‘박정희 각하 탄신 98년’이라고 적은 부분은 풍자의 최고봉이다. 계속 박근혜를 찬양했으면서 왜 마무리에는 ‘박정희 각하 탄신’을 적었을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또한, 이 대자보가 재미있는 점은 디자인적으로도 무척 훌륭하다는 것이다.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촌스러운 글씨체와 제목 모양 등이 이 대자보의 풍자적 성격을 강화한다. 



다 썼는데 어디에 붙이지?

 

대자보가 붙는 대표적인 장소는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이다. 학생회관의 경우, 기둥이나 게시판에 자유롭게 대자보를 붙일 수 있다. 경비 아저씨가 떼어낼 걱정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중앙도서관의 경우, 주 출입구 앞 기둥에 대자보가 붙어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경비관리팀에 따르면 기둥에 붙어 있는 대자보는 떼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대신 주 출입구 옆에 있는 게시판에 붙일 것을 권유했다.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는 볼 사람만 보고, 기둥에 붙은 대자보는 많은 사람이 지나가다 본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본인이 쓴 대자보가 단시간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둥에 붙이고 관리팀이 떼어내기 전에 얼른 본인이 수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백양로 지하 쪽 에스컬레이터 옆 벽 등에 대자보를 붙이는 건 대부분 떼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회관을 제외하고는 게시판에 아닌 곳에 대자보를 붙이는 건 각오를 하는 게 좋겠다.



대자보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가도 뭐 하나 아는 게 없어 쉽게 포기했던 당신. 당장 종이를 펼쳐 들고 고민해 보자. 내 생각을 어떻게 써야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까? 내가 쓴 내용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면 얼마나 멋질까?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대자보의 첫 글자를 쓴 순간 한 발을 내디딘 것이다. 누구라도 쓸 수 있으니, 할 말이 있다면 당신도 붙여보자.


이린 기자 springoflif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