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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두리> 과월호 다시보기/15호 - 2016년 11월

[칼럼] 기묘한 환상 동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지난 9월 말에 개봉했다. 언뜻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느낌도 나고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봉과 동시에 「아수라」,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를 제치고 10월 중순 시점에서 누적 관람객 수 60만을 넘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작품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유령신부」 등으로 뛰어난 상상력과 개성을 보여주었던 거장 팀 버튼 감독의 판타지 영화다. 랜섬 릭스의 베스트셀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는데, 기자가 소설을 읽어본 바는 없지만 영화로서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리뷰해보고자 한다.

 

그저 기묘한 어린이 영화였다. 연초부터 꾸준히 SNS에 올라왔던 예고편만 보았을 땐 2006년에 개봉한,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실패했던 「판의 미로」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영화가 떠올랐다. 그처럼 더 어둡고, 심오하며 잔혹한 영화일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줄거리 자체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각별한 관계를 이어왔던 제이크(아사 버터필드)는 어느 날 할아버지의 의문 모를 살인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이를 위해 할아버지의 유언과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연결시켜 시간의 차원을 넘어 1943년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할아버지가 계셨던 어린이집을 찾아가는데, 이 곳의 ‘이상한’ 사람들은 가장 평화롭고 안전했던 4월 3일을 무한반복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각각 돌연변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제이크 역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의 원장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 분)이 악당 ‘할로우 게스트’에게 납치되지만, 제이크와 아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악당의 침입을 막고 원장을 구해서 평화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초기에 잔인한 장면이 나오긴 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어린이 영화의 느낌이 강했다.

「엑스맨」 같은 돌연변이 영화이지만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이 더해진 점이 독특했다. 배경이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게다가 판타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만 보고도 소설에서 가져올 내용이 꽤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팀 버튼 감독은 이 복잡한 배경과 정보를 최대한 전달하려 노력하지만, 그 양이 벅차서 관람객들이 피곤했을 수도 있다. 제이크와 그의 가족이 먼저 소개되고 그 후에 정말 말 그대로 '이상한' 어린이집과 아이들이 소개되는데, 수많은 특이한 인물들을 납득하는 동시에 복잡한 세계관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영화의 액션이 부족했다. 악당과 싸우는 장면인데도 긴장감이 없고 오히려 할로우 게스트들의 엉성한 모습이 귀여웠다. 잔인하고 심오한 내용이 앞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서 뒷부분이 시시하고 긴장감이 풀렸다. 마지막 30분으로 스토리가 과감하게 해피엔딩으로 변할 뿐더러 전개가 빨라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선 좀 더 어린이의 초점에 맞추어져 있고 그저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싸울 때 어린 아이들이 활과 폭탄 등 무기를 직접 제조해서 사용하는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실제로 원작이 고딕(Gothic) 문학 3부작 소설이라, 영화 또한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이크가 처음 어린이집을 찾아왔을 때 질투, 소속감의 문제로 어린이집 학생들과의 갈등을 겪는다. 외관으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실제로는 제이크보다 오래 살아온 제이크 할아버지 또래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용감하면서도 비관적인 모습이다. 할로우 게스트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나 심장을 이식하는 순간 시체의 모습으로 다시 일어나는 피터의 모습 또한 상당히 충격적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할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질투, 죽음 등의 현실적인 감정 요소들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싹한 전반부에서 가벼운 후반부로의 연결과, 호러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울함 속에서 밝고 희망 넘치는 어린이집 이미지의 조화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기묘하게 다가왔다. 이는 2004년 개봉작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과 매우 흡사하다.

어린이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저 신기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통쾌하게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재밌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팀 버튼을 아는 사람, 팀 버튼의 영화라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120분의 러닝타임이 특별했을 것이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늘 유쾌함과 어두움이 공존해왔다. 글로 표현된 소설을 팀 버튼 만의 상상력으로 재현시킨 작품이니만큼 이번 영화도 예외 없이 뛰어난 영상미가 돋보인다. 현재를 보여줄 때는 칙칙한 회색의 채도가 낮은 필터가 사용되는 반면 1943년으로 돌아가는 순간 목가적인 느낌과 동시에 아날로그적 감성도 불러일으킨다. 이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나 흔한 컴퓨터 그래픽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판타지인데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어서 현실적인 느낌이 지배적이다. 이쯤되면 이 소설과 팀 버튼은 천생연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연출 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팀 버튼에게 완벽하다. 팀 버튼의 명성은 이미 높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을 독보적이고, 괴상하다고 평가하기에도 새삼스럽다. 감독으로서도 그는 분명 평범하지 않고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의 스타일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이미 현대 사회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문구지만  팀 버튼이 대표적인 예이며 그도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다. 대부분의 현대 돌연변이 영화가 그렇듯,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도 제이크를 비롯한 이상한 아이들이 큰 활약을 한다. 사춘기와 겹쳐서 왕따, 할아버지의 죽음, 불안정한 가정으로 혼란을 겪던 제이크도 영웅이 되고, 자신이 틀리지 않다는 걸 결국 증명하게 된다. 팀 버튼 작품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리뷰하고 있는 이 영화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능력자, 즉 돌연변이라는 테마는 사실 뻔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돌연변이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미 시장에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했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거부감 없이 열광하게 되는 현상도 기묘하다. 물론 연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킬링타임을 위해, 좋아하는 배우를 위해 가볍게 보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현실성 없다고, 유치한 영화 같다고 피하는 관람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클리셰, 상투적인 설정이 끊임없이 흥행에 성공하고 만들어지는 것은 말 그대로 이런 비현실성이 좋아서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동화도 기분 전환용으로 최고다. 비록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판타지 영화 중에서도 성공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든 말든,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팀 버튼의 세계를 방문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꽤 인상적이다.

 

글, 디자인/김서희 수습기자
seoheek01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