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남이 연애를 하든지 말든지, 다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그냥 혼자 잘 살겠다는데, 왜 이렇게 이곳저곳에서 쿡쿡 쑤셔대는 걸까? 우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넘겨버리는 이런 상황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전방위 비정형 비연애인구 전용 잡지’를 표방하는 <계간홀로>의 편집장이자,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출간한 이진송 씨다. 그녀는 “연애 안 해도 죽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녀와 왜 이런 잡지를 만드는지, 한국 사회에서 왜 이렇게 연애를 두고 말이 많은지, 나아가 연애와 관련된 이슈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나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여자 나이'
출처: SBS '강심장' 방송화면 캡쳐
<계간홀로>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뭔가요?
2012년에 저는 25세였고, 세간에는 여자 나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느니 25세까지 연애하지 않으면 학이 된다는 도시 전설이 떠돌고 있죠. 2012년에는 또 지구멸망설도 있었고요. 학도 안 되고, 지구도 안 망했는데 못할 게 뭐람! 연애 안 하면 어딘가 하자 있는 인간으로 보는 연애 지상주의에 침이나 뱉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창간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연애 권하는 사회’라는 점은 많은 매체에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매체 대다수가 한국 사회가 연애를 권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사회 특유의 획일화’를 지적하는 수준에서 그치는데요. <계간홀로>를 만들고 계시니 ‘연애 권하는 이유’에 대해 더 예리한 시각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왜 한국 사회는 이토록 집요하게 연애를 권할까요?
연애를 권유하는 것은 사실 대부분 국가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이에 대해 앤서니 기든스나 울리히 벡, 바우만 같은 학자는 불확실한 현대인들의 삶, 관계의 약화 등을 원인으로 꼽고 에바 일루즈는 감정 심리학에서 접근하여 연애가 개인의 자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분석하기도 하죠. 한국이 연애 권유에서 유별난 지점은 바로 오지랖 때문입니다. ‘그런가 보다’ 하는 정신이 부족하고 사적인 거리가 유지가 안 되니까 지극히 사적인, 왜 연애를 안 하냐, 첫 키스나 첫사랑은 언제냐, 애인이랑 어디까지 갔냐, 결혼했냐,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그런 말들을 마구잡이로 던지죠. 남의 사생활을 엔터테인먼트화하고 가십거리로 쓰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다 보니 연애에 대한 압박도 좀 더 노골적이고요.
한국 사회에서 연애가 지나치게 찬양받는 것에 대해, 여가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연애가 ‘그나마 차별화되고 재미있는 여가 활동’으로 여겨지는 것과 연결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계간홀로 독자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남자분들이 오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시죠.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은 혼자/남자끼리 할 수 있는 활동이 상당히 자연스럽지 못하게 취급받는 면이 있고(영화 보기, 카페 가기, 여행 가기, 혼자 밥 먹기, 쇼핑) 그러 다보니 연애하지 않음은 곧장 그 사람의 문화적 빈곤으로 이어진다고요.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혼자, 혹은 친구들과 뭘 하는 여자들은 많지만, 남자들의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동은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다 보니 비연애에 대한 억울함이나 자조, 자학 등도 남성 집단에서 더 많이 발견됩니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연애가 일종의 ‘특권’으로 취급되다 보니, 한 집단 내에서 연애 중인 사람들은 미묘한 차별을 겪기도 합니다. 연애사를 일일이 얘기할 것을 은근히 강요받는 등의 일이죠.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애가 특권으로 취급받는 현상에 따른, 연애인구가 겪는 차별이죠. 아까 이야기했듯 개인의 사생활이 엔터테인먼트화되는데, 그건 ‘좋은 거’니까 당연히 사람들의 ‘말하라’는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습니다. 이것도 결국은 어떤 연애만이 특권임을 폭로하는 효과를 낳는데, 가시화되지 않는/공개할 수 없는/ 사회가 승인하지 않는 연애는 말할 권리조차 확보하지 못하지요, 성소수자들의 연애라든가 장애 인구의 연애 등.
<계간홀로>는 ‘전방위 무정형 비연애인구 전용 잡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비연애인구 전용 잡지’라는 면에서 다루는 내용에 한계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는 않나요?
‘비연애’라는 말은 단순히 ‘연애를 하지 않음’뿐만 아니라 사회가 연애라고 정의하는 협소한 테두리 바깥의 ‘다른’ 연애, 어떤 규범 바깥의 연애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연애나 장애인구, 청소년의 연애 등 세상이 박탈하려고 하는 연애를 조망하지요. 또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연애 상에 대한 고찰도 진행하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 이성애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연애 관계 내에 내재한 성별 권력 불균등 등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고찰합니다. 소재의 고갈은 없어요. 9호까지 나왔고 항상 다룰 내용은 넘쳐요.
<계간홀로>의 편집부터 기사 등 컨텐츠 제작까지 모두 직접 하시는 건가요?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으시나요?
최근에는 잡지가 조금 알려지면서 직접 투고하시는 분도 늘고 원고 청탁을 했을 때 응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내용 자체를 충당하는 어려움은 조금 덜합니다. 언제나 제 능력이 닿는 만큼만 고생해요. 그래서 디자인도 촌스럽고 오타도 많고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죠. 고흐가 후세 인들이 쓰라고 엄청 멋있는 말을 남겼는데요. 어렵고 힘드니까 재밌는 거죠.
최근에 텀블벅에서 <계간홀로> 9호 출판 모금이 진행되었는데, 목표액의 360%를 달성하셨더라고요. 이만큼 큰 화제를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사회에서 비연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면서 잡지가 이야기하는 바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봤자 아직 멀었지만요. 언제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서 계란을 맡고 있습니다.
<계간홀로>, <연애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글로 배우는 연애’ 워크샵 등, ‘연애’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왜 많은 사회적 이슈 중 ‘연애’에 집중하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잡지 창간 시점에서 저는 연애 시장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20대 여성이었고, 그것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연애는 정치적인 사안이거든요. 인종, 연령, 젠더, 계급, 자본주의 등 엄청나게 많은 영역이 교차하는 장이죠. 또한, 입시-연애-취직-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어떤 ‘정상적’ 삶을 강요하는 세상의 질서를 끊고 싶었는데 연애가 저에게 가장 적절한 소재였던 셈이죠.
갈수록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공부하진 않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듯 합니다. 저는 이진송 씨의 페이스북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어서 공유하시는 글이나 올리시는 글을 가끔 읽어보는데, 페미니즘 관련 글이 자주 올라와서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회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성차별적인 가부장제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게 사실인데,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요?
잡지를 처음 낼 때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미지는 ‘촌스럽고, 어딘가 화 난, 인기 없는 여자들이나 하는 억울한’ 것이었어요. 이렇게 대중적으로 모두가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건 정말 좋아요.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도 페미니즘 이슈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여성 분들을 많이 보고요.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 학문이다, 한 쪽의 입장만 대변한다, 뭐 이런 소리를 하는데 다 헛소리고요. 이것도 엄연한 역사가 있는 학문이니 숟가락 얹으려면 제대로 된 책이라도 한 권 읽으면서 시작했으면 해요. 저는 페미니스트가 된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뒤집어 보고, 다시 생각하고, 권력관계를 찾아내고 새롭게 사유하는 거 진짜 짜릿하거든요. 그런 관점으로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진 않겠죠. 90년대 페미니즘 물결이 휩쓸 때도 세상이 변할 줄 알았지만 2016년은 그때보다 훨씬 퇴보한 면도 있고. 섣부른 낙관도 전망도 저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에요. 세상을 바꾸고 싶은 모두가 그렇겠죠.
최근 여러 대학교에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단체 카톡방이 아니더라도,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이에 따른 성희롱은 많은 곳에서 문제시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지요. 결국은 눈앞의 대상이 여성이라는 성별로 인지되는 순간 인간이 아니라 성적인 존재로 보고 대등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니까요. 제가 잡지를 만들면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주장하는 게 ‘성적 대상’, ‘연애 대상’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쁘다는 칭찬도 결국은 평가이고 대상화인데, 이런 점을 지적하면 열폭이라느니 너무 예민하다느니 반발이 일어나죠. 핵심은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가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이 기초적인 게 참 안될 만큼 사회가 많이 비뚤어져 있어요. 자기가 하는 게 성희롱이라는 인지 자체가 없거나, 있어도 그걸 놀이나 남자들끼리 흔히 할 수 있는 잡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문제고요. 이럴 땐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문제 제기하고 중단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나만 쓰레기야?”라면서 모두를 하향 평준화하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인데 이런 식으로는 모두 쓰레기로 살 수밖에 없거든요.
마지막으로, 혹시 대학생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여러분 연애 안 해도 죽지 않아요. 모두가 연애하면서, 심지어 잘하면서 살 수 없어요. 연애는 보급품이 아니고, 전리품도 아니며, 결국 관계의 문제거든요. 안 하거나 못하거나, 애먼 사람 원망하거나 자학하거나, 망한 연애 붙들고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각자 인생의 운전대를 잡읍시다(혜민스님 패러디) .
점점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는 사회라지만, 아직도 개인적 부분에 대한 참견과 오지랖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연애에 대한 말들이다. 연애와 같이 사생활과 깊이 관련된 영역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은 사적인 영역에서조차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다수와 다른 생각을 가지면 '이상한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이제야 서서히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라나고 있다. 갈수록 소수자를 배제하기보다, 더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간홀로>와 같은 잡지가 나오고, '연애하지 않는 게 왜 나쁘냐'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이 사회도 변해가는 중이다.
글, 디자인/이린 기자
springoflif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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