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나무위키’라는 위키 사이트에서 몇몇 사용자들이 ‘Equalism’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성평등주의’라고 명명하고 페미니즘을 대체하는 최신 사조인 양 서술한 사건이다. 정작 학계나 대중은 이런 말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문서에서 참고로 쓴 문헌들에는 이퀄리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문서 전체가 날조된 것이다. 일부 사이트에서 이 서술을 인용하여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고, 서구에서는 요즘 이퀄리즘이 대세다’라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하는 등, 이 일은 뜻밖에 파장이 컸다.
전체적 흐름을 들여다보면, 이 일의 배경에는 꽤 오래된 주장이 깔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고, 남성혐오와 같다’는 것이다. 즉 페미니즘은 성 평등이나 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여성이 남성을 누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사건에 한정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런 경험이 있었다. 어떤 수업에서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발언 도중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 부분은 성 평등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페미니스트는 과격한 여성우월주의자라는 듯이 말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변질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여성우월 사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흐름이 있고, 그중 여성우월주의도 포함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페미니즘=여성우월’이라는 논리로 연결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는 순간 수많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시선을 마주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그 오해에 뒤따르는 각종 편견, 그리고 그러한 편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다룬 책이 있다.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부제: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저기요 여기 사이다 하나요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던 때의 소개글
이 책을 딱 펼치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장은, 수많은 고구마 그림이 있는 페이지다. ‘그게 왜 여성혐오야?’라는 이름이 붙은 상자 안에, 읽기만 해도 목이 메게 하는 질문이 붙은 고구마들이 가득하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 보겠다.
요즘은 남자가 더 힘들어. 이득 보는 것도 없고.’
‘이제 여자가 약자도 아니고…’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이 중요한 거 아니야?’
이런 질문에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여성은 사회에서 이러이러한 차별을 받고 있고, 남성이 겪는 문제는 여성 지위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사회 부조리의 산물이고…’를 줄줄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답은 뜻밖인데, ‘당신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대화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한 사람은 이해를 시켜야 하고, 한 사람은 팔짱 끼고 앉아서 고개만 젓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고 말한다. 특히 남성이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은데’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차별을 경험하지 못하는 쪽이 어떻게 차별을 경험한 사람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한다. ‘차별은 애초에 설득의 문제가 아닙니다’. ‘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다음 논의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남성이 겪는 힘듦’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 얘기가 도출해내는 결론은 ‘남성이 이 사회에서 힘들다’는 것이지, ‘그러므로 사회는 평등하다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별을 논의하는 데 이런 주장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즉, 상대가 이런 식의 주장을 편다면, ‘나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구나’라고 여기고 더 이상의 노력을 중단해도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힘든 건 여성 때문이 아니에요
그래도 대화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여성들과 페미니즘을 이해할 자세가 있는 남성들을 위해서도 이 책은 여러 가지 설명을 준비해 놓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사회적으로 힘든 점이 많다. 여성보다 경제적 부담을 더 크게 져야 한다거나, 군대에 가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 여성 때문일까? 여성이 군대에 안 가서, 여성이 뭘 사달라고 요구를 해서 생기는 일들일까? 그렇지 않다.
‘가부장제는 경제권을 독점하고, 여성과 달리 ‘군대에 갈 자격이 되는’ 남성의 우월성을 토대로 작동합니다. (52쪽 중)'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우월한 남성’의 위치에 있기 위한 수많은 의무를 부여한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특권 역시도 쥐여주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남성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는 여성이 만든 것이 아니다. 즉, 논의의 초점이 완전히 빗나가 있는 것이다.
대화하고 말고는 자유
‘아니 그래도 좀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줄지 말지’는 설명을 해주는 당사자가 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치 않을 때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의 자유다. 만약, 누군가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고, 여성이 차별을 받는지 그 실태가 알고 싶다면, 페미니스트를 상대로 ‘나 좀 이해시켜줘’라고 말하기 전에 인터넷이나 관련 책을 찾아보면 된다. 그리고 만약 상대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협조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상대의 말을 부정해야지’라는 태도로 말을 듣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냥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누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대해 궁금한 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나, ‘나는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사유재산을 가질 것을, 참정권을 보장받을 것을 주장하던 것이 ‘과격하고 공격적이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사회는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예전보다 ‘김치녀’, ‘김여사’ 같은 말을 입에 담기가 조금은 힘들어졌다. ‘이퀄리즘’이 아닌, ‘페미니즘’이 이렇게 현실을 바꾸어 놓았다. 여성으로서, 혹은 성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글,디자인/이린 기자
springoflif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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